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래드 토마스 (문단 편집) == 경력 == 1995년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으나 1997년 5월 9일 계약이 해지되었고, 5월 12일 자유 계약 선수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주로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다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보스턴 레드삭스]]와 [[일본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거쳐 2008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기존의 마무리 투수였던 [[구대성]]의 무릎 수술로 인한 마무리 부재를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2007시즌에 11승 13패라는 호성적을 보여준 외국인 [[선발 투수]] [[세드릭 바워스]]를 포기하는 용단을 내려가며 토마스를 영입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선발도 겸직할 수 있는 용도로 영입. 본인도 인터뷰에서 처음엔 선발 투수로 영입된 줄 알았다가 마무리를 맡게 됐다고 술회했다.] 시즌 초기에는 한국의 일교차 심한 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첫 등판을 [[블론세이브]]로 맞이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 시기 야구팬들 사이에서 '또맞스', '불마스'로 불렸다. 과거 한화에서 뛰었던 외국인 마무리 [[레닌 피코타]]의 악몽을 재현하나 우려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기량도 회복되어 '토마신', '또막스' 등으로 별명이 변하며 한화의 초중반 상승세에 일조하였고, 어느새 [[삼성 라이온즈]]의 [[오승환]]과 [[세이브(야구)|세이브]]왕을 놓고 경쟁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비록 시즌 후반기에 팀이 몰락하여 경쟁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지만, 그래도 시즌 3승 6패 3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84를 거두어 2008년 세이브 순위 2위에다 [[KBO 리그]] 사상 최초의 30세이브 외국인 투수가 되었다. 주 [[야구의 구종|구종]]은 150Km대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구위는 위력적이지만 추위에 약한 모습과 2이닝 이상 투구하면 구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에 연장전에 돌입할 때는 토마스의 뒤를 받쳐줄 또 다른 구원투수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발굴된 것이 2년차 투수였던 [[김혁민]].] 2008시즌 종료 후 [[일본프로야구]]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가 들어왔으나, 이런저런 물밑 협상 끝에 직전 시즌 연봉보다 25% 인상된 계약금 5만 6천 달러, 연봉 30만달러 등 총액 35만 6천 달러에 재계약하였다. 소문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오퍼가 들어왔으나 딸 시에나가 한국이 좋다고 해서 가족회의 끝에 한국에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한화는 2009시즌을 완전히 죽을 쒀서 토마스는 [[마무리 투수]]로서 할 일도 없었고, 본인의 성적까지 신통치 않아 한화의 상승세를 잡고 늘어지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덕분에 폭주기관차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2009시즌 부진의 이유는 아내의 [[결핵]] 투병 때문이었다고 하며, 2군에 내려갔던 이유도 간병하느라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은데 잠시 쉬다 오라는 식으로 보냈다는 것이 거의 정설. 후반기 들어 구위를 조금씩 회복하면서 다시 호투를 거듭하였으나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팀에서 마무리 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호주 대표팀으로 불려가서 [[쿠바]]전에 마무리 등판했다. 순식간에 쿠바 타선을 잠재워 버리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줬다. 그러나 팀은 타선의 힘이 약간 모자라서 1점 차로 패배했다. 2010시즌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입단해, 4월 29일(한국 기준) 미네소타전에 구원 투수로 나와 2.1이닝 2탈삼진. 승리투수가 되었다.[* 참고로 이 때 미네소타의 인기 스타 [[조 마우어]]를 잡았다.] 2010시즌 디트로이트의 선발이 무너지고 시즌 중반 주마야의 시즌아웃, [[돈트렐 윌리스]]와 니푸더의 부진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를 잡았는데, 주로 롱 릴리프 역할을 수행하며 땜빵 선발로 출전하기도 했다. 시즌 성적은 49경기 출장 6승 2패 69.1이닝 평균자책점 3.89로 얼핏 보면 준수한 성적이지만 승계주자 실점률이 49%에 달할 정도로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가 잦았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구대성]], 옥스프링과 같이 [[호주 프로야구 리그]]의 시드니 블루삭스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내지 못하고 나오면 엄청나게 얻어맞았다. 2012년 [[대만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에 월 1만 5천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입단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호주 대표팀에 뽑혔으며 1라운드 B조에서 맞붙은 한국과 호주의 경기에 등판하였다. 이 때 해설을 맡았던 [[박찬호]]는 친정팀에서 마무리를 맡았던 투수인데 아느냐는 질문에 "미국에 있었던 때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불평 불만이 많았다더라. 마무리이면서도 6, 7회와 같이 이른 시점에 등판하는 데 불평을 했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어디서 어떻게 들은 평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무리가 6회에 등판시키는데 불만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당시에는 김성근의 SK가 한창 호성적을 올릴 때라 이에 영향을 받아서 투수 기용을 변칙적으로 하는 팀이 많았다. 소위 벌떼 야구가 그것.] 2014년 3월 20일에 벌어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호주 리그 올스타 팀 친선경기에도 참가, 8회에 팀이 대량실점을 당한 후에 등판해 1실점(이전 투수 승계주자 실점)으로 틀어막고 내려갔다. 2013년 이후 슝디 엘리펀츠에서 퇴단 후 2014년 하반기에 재입단했다가 다시 퇴단했다. 대만에서는 통산 59세이브로 현재 CPBL 통산 세이브 9위를 기록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